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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준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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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준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으며, 낙양령 시절에는 '와호'로 불렸다. 영천태수를 지냈으며 197년에 사망했다. 조위에서 무양정후로 시호를 받았고, 서진이 건국된 후에는 영천부군으로 추존되어 칠묘에 안치되었다. 동진 원제가 서진 회제를 복권시키려 영천부군의 묘위를 제거하려 했으나, 온교의 건의로 다시 세워졌다. 사마준은 사마의, 사마소, 사마염으로 이어지는 명문가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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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준 (후한)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원이(元異)
출생113년
사망197년
아버지예장부군
자녀경조부군
작위무양정후(舞陽亭侯) (조위 추존)
영천부군(潁川府君) (서진 추존)
전임예장부군
후임경조부군
후임 (추존)무양성후
기타서진 칠묘 배향

2. 생애

사마준은 키가 8척 3촌이고, 허리띠 둘레는 10둘레이며, 크고 남다른 풍채를 지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의존하였으며, 낙양령 시절에는 백성들로부터 '와호(臥虎, 누워 있는 호랑이)'라는 칭송을 받았다.[2] 이후 영천태수를 지냈으며 197년에 사망했다. 조위에서는 무양정후(舞陽亭侯)라는 시호를 내렸다가, 266년 사마염서진을 건국하자 영천부군(潁川府君)으로 추존되어 칠묘에 안치되었다.

이후 사마준의 후손인 동진 원제동진을 세워 사마씨 황실을 재건한 후, 서진 회제를 복권시키기 위해 영천부군의 묘위(廟位)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온교의 건의로 묘위를 다시 세웠다.

3. 가족

관계이름
부친사마량
아들사마방
손자사마의
증손사마소
현손사마염



사마준의 가계는 후한 말기부터 서진, 동진 시대까지 이어지는 명문가였다.

참조

[1] 서적 晉書 https://zh.wikisourc[...]
[2] 문서 허난성 우주(禹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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